구스타보 두다멜 /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
말러 교향곡 5번
구스타보 두다멜의 이름이 ‘그라모폰’에서 처음으로 거론되었던 것은 지난해 8월호에서였다. 2004년에 열린 제1회 말러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그는 그 무렵에 이미 에테보리 심포니의 상임 지휘자였고, 도이치 그라모폰과 계약한 상태였다. 그때부터 지금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베토벤 교향곡 5번, 7번으로 혜성처럼 등장하더니 에사-페카 살로넨의 뒤를 이어 2009년부터 LA 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를 맡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말러의 교향곡 5번에 뛰어들었다. 과욕일 수도 있으며 겸손치 못한 처사라고 비판받을 여지도 있어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중견 지휘자가 되어버린 프란츠 벨저-뫼스트가 예전에 한 말을 인용하고 싶다. “옛 거장들의 녹음과 내 녹음을 비교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들이 내 나이 때에 남긴 녹음들을 우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적어도 지휘자 입장에서는 이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물론 녹음은 공연과 마찬가지로 지휘자의 공적 발언이며, 일회성에 머무는 공연보다 훨씬 더 지속적인 영향력을 지니므로 그 결과에는 스스로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고 여기지만 말이다.
‘고난에서 광명으로(per aspera ad astra)’라는 모토를 제외하면 베토벤과 말러의 5번은 공통점이 거의 없다. 전자는 교향곡 전통이 완성된 시기의 작품이고, 후자는 그 전통이 붕괴하려는 시기의 곡이다. 따라서 당연히 전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더구나 말러의 교향곡에 해석의 여지가 많은 것이 사실이라 해도, 이미 적지 않은 지휘자가 이 작품에 도전해 각자 나름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상황에서 두다멜이 과연 세인의 기대에 부응하는 자기만의 색깔을 보여주는 것이 가능할까? 이런 의문과 함께 내게 도착한 음반을 들어보았다.
적어도 ‘차별화’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두다멜은 기대 이상의 일을 해낸다. 그의 해석은 약간 투박하면서도 여러 면에서 대단히 대비가 심하다. 템포도 그렇거니와 음색에서 그렇다. 색채적이라기 보다는 원색적인 수준에 가까울 정도로 강렬한 대조를 보여주나, 불레즈의 일부 말러 녹음(특히 4번과 '대지의 노래')처럼 그 자체가 전면에 부각되지 않는다. 성부별 비중 안배의 경우에는, 자신이 생각하는 몇몇 주된 성부에 대해 가중치를 부여하는 경향이 잇는데, 어느 성부가 주된 성부에 속하느냐는 그때그때 다르다 성부 간에 이루어지는 무게중심의 이동은 비교적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편이다. 전체적인 템포 설정은 1, 2, 4악장의 경우에 통상적인 수준인 반면, 3, 5악장은 상당히 빠른 편이다.
또한 두다멜은 근래 보기 드물 정도로 루바토를 자주 구사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이 점은 장송 행진곡인 1악장에서부터 뚜렷하게 드러난다. 두다멜은 말러의 지시어인 ‘엄격하게(streng)'을 지킬 마음이 아예 없거나, 적어도 템포에는 이 지시를 적용되지 않을 생각인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폭풍우 휘몰아치는 1 트리오의 중간(6.12경)에 갑자기 고삐를 늦추는 놀라운 연출을 시도할 리 없지 않은가. 세부적인 다이내믹 변화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2악장은 더욱 과격한 대조를 보여준다. 첫머리를 이처럼 급박하게 시작하는 연주는 이전에 없었다. 발전부(여기서는 4.02부터)에 들어서자마자 템포를 극도로 늦추는 연주 역시 이전에도 없었다(재현부 시작 지점 전후에도 이런 템포가 적용되었다). 세부적인 루바토와 다이내믹 변경은 셀 수 없이 많다. 코다에서 목관이 이상하리만치 선명하게 울리는 것도 특기할 만하다. 3악장은 전곡 가운데 가장 길며, 많은 주제가 등장하고 구조적으로도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자칫하다가는 연주가 생기를 잃기 쉽다. 두다멜은 이 문제를 선명한 템포 대비로 해결한다. 렌틀러 역구는 빠르며, 푸가토 주제가 등장하는 대목은 예외 없이 더 빨라진다(5악장 역시 푸가토나 푸가풍의 삽입구가 등장할 때마다 템포가 급격히 빨라지는데, 이런 설정의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반면 호른 독주부나 왈츠 대목에서는 템포가 매우 느려진다. 마치 거대한 무도회장에서 여러 남녀가 서로 다른 춤을 추면서 빙빙 돌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호른 독주자(누구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의 기량은 탁월하며 음조를 잘 유지한다. 특히 호른 주제와 왈츠 선율이 처음으로 결합하는 대목(7.27-7.52)에서는 정밀하게 통제된 호른 독주가 감동적인 만큼 달콤한 음색을 들려준다. 코다는 전체 연주의 성격에 비추어 보면 더 극단적으로 연주되어도 좋았을 듯하다.
유난히 템포 설정과 관련된 논란이 많은 4악장에서 두다멜은 통상적인 템포를 취하고 있다. 최근에 나온 연주들과 비교해 보면 마이클 틸슨 토마스/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 제이스 드프리스트/런던 심포니(Naxos)의 녹음과 비슷한 템포이다. 저음을 강조해 깊고 그윽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5악장에서도 역시 저음현이 대단히 강조되어 있다. 이에 더해 비상할 정도로 추진력이 강조된 해석은 세부가 다소 뭉개지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나 그 점을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역동적이며 신나는 연주이기도 하다. 맨 마지막 3마디에서의 급발진은 좀 지나치다고 여길 수도 있으나, 두다멜의 장난기를 여실히 보여준다. 녹음은 일반적인 DG 녹음보다는 잔향이 풍부하나 초점은 뚜렷한 편이며, 정위감 역시 매우 탁월하다(무엇보다도 3악장 중간 6.22 대목에서 시작하는 피치카토 악구를 들어보라).
“젊었을 때는 오류도 괜찮다. 그러나 그것을 노년에까지 끌고 가면 안 된다.” 괴테의 말이다. 어쩌면 그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것은 이런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젊었을 때 어떠한 오류도 저지르지 않았다면 그 자체가 오류이다.” 루바토가 심한 두다멜의 해석 스타일을 두고 ‘젊은이답지 않은 매너리즘’이라고 평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내 상각은 그와 정반대이다. 젊은이이기에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이런 해석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더 나이가 들면 ‘재는’게 많아져 이런 해석을 구사하기 힘들어진다. 특히 요즘처럼 보눈 눈도 많고 말도 많은 세상에는 말이다. 물론 이런 해석이 마음에 들지 않을 사람도 적지는 않을 것이다(불현듯 불레즈의 얼굴이 떠오른 것은 왜일까). 그러나 번스타인이라면 아마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앞길이 창창한 이 젊은 지휘자가 살면서 말러 5번을 다시 녹음할 날이 또 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날이 올 때까지는 나도 기꺼이 번스타인의 편에 서고자 한다.
글_황진규 / 음악 칼럼리스트 (Gramophone 2007년 6월호에서 발췌함)
* 루바토(rubato) :
('훔치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rubare에서 유래)
연주자가 더 효과적인 음악표현을 위해 특정 박이나 마디, 악구 등을 약간 길게 늘이거나 당김으로써 리듬을 미묘하게 변화시키는 기법(루바토는 템포 루바토의 준말).
이 기법은 대개 악보에는 표시하지 않고 연주자의 임의판단에 따르며, (재즈의 경우처럼) 선율만 변화시킬 수도 있고, 음악 전체를 변화시킬 수도 있다. 루바토를 적용할 때에 연주자는 악보상의 음가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 아니며(전체의 기본 템포는 일정하게 유지함), 일정한 시점에서는 다시 처음의 기본 리듬으로 돌아간다. 진정한 '템포 루바토'는 구전음악에서 발견될 수 있는데, 한 예로 루바토적인 특징을 많이 갖고 있는 헝가리나 루마니아 농민들의 음악은 프란츠 리스트와 벨라 바르토크와 같은 작곡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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